너를 이해 할 수 있을까?

: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무겁다. 어떻게 너를 이해 할 수 있을까? 너를 이해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나의 부족을 절감하며 너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본다.

아이들의 세상을 가만히 그려보았다. 이 아이들은 원래 양수라는 따뜻한 바다에서 살았다. 그들에게 탄생은 공기와 중력이 지배하는 낯선 육지로의 불시착일 것이다. 평생 육지에서 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바닷속에 던져진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아마 그곳에서 마주할 공포는 아이들이 매 순간 느끼는 감각과 닮아있지 않을까.

  • 소통의 단절을 경험할 것이다. 물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는 무력한 거품이 될 뿐이다. 내 진심은 상대에게 그저 의미 없는 웅얼거림으로 들릴 것이다. 아이들의 알 수 없는 소리들도 소통의 굴절을 겪으며 내뱉는 처절한 몸부림일까?
  • 관계 맺기가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두운 심해에서 정체 모를 생명체가 다가오는 것은 그 자체로 공포다. 상대가 다정한 마음이어도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게 될 것이다. 누군가 다가오면 눈을 피하는 아이들도 이런 감각적 침입을 견디는 중일지 모른다.
  • 감각의 날카로움에 소스라칠 것이다. 육지에서는 부드러운 식물이었을 미역 줄기가 물속에서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질 것이다. 가벼운 접촉조차 살을 파고드는 통증으로 변할 것이다.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의 압력은 이토록 무겁고 날카로운 것이 아닐까.
  • 집착은 곧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될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잡은 나무판자 하나는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생명줄이다. 손을 놓는 순간 심연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낄 것이다. 아이들이 특정 물건에 매달리는 것은 낯선 세상에서 자신을 지탱해 줄 부표를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일 수 있다.
  • 걸러지지 않는 소음이 고통이 될 것이다. 물속에서는 아주 작은 진동도 온몸을 때리는 천둥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뇌를 뒤흔드는 파도 소리를 스스로 차단할 방법이 나에게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귀를 막는 행동은 감당할 수 없는 증폭된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최후의 선택일 수 있다.
  • 시야의 왜곡 때문에 늘 불안할 것이다. 물속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흐릿하고 모든 것이 굴절되어 보인다. 멀리 있는 거대한 풍경보다 바로 눈앞에 떠다니는 작은 입자에 집중해야 겨우 마음이 놓일 것이다. 아이들이 전체를 보지 못하고 사물의 작은 부분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지 모른다.
  • 몸의 경계가 사라진 혼란을 겪을 것이다. 지탱해 줄 중력이 없으니 내 팔다리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중심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흔들어야 비로소 나의 존재가 느껴질 것이다. 상동행동은 흩어진 감각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간절한 몸짓일 수 있다.
  • 이동하는 것조차 거대한 사투가 될 것이다. 물의 저항 때문에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육지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것이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낯선 중력에 적응하려 애써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독특한 걸음걸이는 이 낯선 환경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내딛는 필사적인 발걸음일 것이다.
  •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재앙과 같을 것이다. 평온하던 물속에 갑자기 차가운 조류가 밀려들면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공포에 빠질 것이다. 사소한 변화가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파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일과가 바뀔 때 무너져 내리는 아이들의 마음은 이런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 방향을 잃고 끝없이 벽을 찾아 헤맬 것이다. 어디가 위인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공간의 끝을 확인해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복도를 뛰어다니거나 벽에 몸을 부딪치는 행동은 안전한 경계를 확인하여 안도감을 얻으려는 시도일 것이다.


아이들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바다의 감각을 지닌 채 육지의 질서를 견뎌내느라 온몸으로 진통을 겪는 중일지 모른다. 내가 물속에서 느낄 그 막막한 공포를 떠올려 본다. 아이들의 어려움이 비로소 마음에 와 닿는다. 과연 내가 너희를 도와줄 수 있을까…?

댓글 남기기

Optionally add an image (JPEG on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