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글씨가 너무 엉망이에요.

아이들이 글쓰기를 싫어하고 글씨를 못 쓰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본다. 단순히 연습 부족이나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삶의 풍경이 너무나 급격하게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지금의 아이들은 일상에서 누군가가 펜을 잡고 정성껏 글을 쓰는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거의 없다. 과거에는 교실 전면에 놓인 큰 칠판 위로 선생님의 분필이 지나가며 글자가 완성되는 소리와 움직임을 온종일 보고 자랐으나, 지금은 그 자리를 매끄러운 화이트보드나 PPT 화면, 화려한 영상 자료가 대신하고 있다. 선생님의 손글씨는 고작 제목이나 핵심 단어를 적을 때나 잠깐 볼 수 있는 희귀한 장면이 되었다.


가정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부모가 식탁에 앉아 편지를 쓰거나 종이 가계부를 채워 넣고, 신문을 보며 여백에 메모를 남기는 모습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관공서나 은행조차 종이 서류 대신 태블릿 PC에 전자 서명을 하는 시대니, 아이들에게 손글씨는 일상의 도구가 아니라 어쩌면 인사동 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조선시대 붓글씨처럼 낯설고 박제된 전통문화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손가락 끝의 감각보다 액정 화면을 문지르는 스와이프 감각에 먼저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종이 위에서 연필이 만드는 마찰력은 상당한 피로감을 주는 물리적 저항이다. 클릭 한 번으로 글자를 지우고 옮기는 디지털 환경과 달리, 지우개로 벅벅 문질러 종이가 해어지는 경험은 비효율적이고 짜증 섞인 노동으로 다가올 뿐이다.


물론 손글씨가 두뇌 발달을 돕고 눈과 손의 협응력을 기르며 소근육을 발달시킨다는 교육적 가치는 분명하다. 하지만 요즘의 생활 패턴 속에서 아이들에게 반듯한 글씨 쓰기를 끝없이 강요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일반적인 아이들도 힘겨워하는 이 과정을, 특히 주의집중력이 부족하고 공간 감각이나 소근육 조절이 어려운 경계선 지능 및 느린 학습자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교육이라기보다 가혹한 고문에 가깝다. 글자 한 자를 칸에 맞춰 써넣는 데 모든 인지적 에너지를 쏟아붓느라 정작 담아야 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기 일쑤다. 엄마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아이에게는 학습에 대한 거부감만 심어주는 손글씨 쓰기가 과연 그토록 절대적인 가치인지 되묻게 된다.


기록의 본질은 결국 ‘무엇으로 쓰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담는가’에 있다. 이미 세상은 타이핑을 넘어 목소리를 즉시 텍스트로 바꿔주는 AI 기술이 보편화된 시대로 접어들었다. 손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고통받는 아이들에게는 악필을 교정하느라 학습 의욕 자체를 꺾기보다, 기술적 도구를 빌려 아이의 머릿속에 갇힌 생각의 보따리를 풀어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 훨씬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붓글씨를 못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지 않듯, 손글씨 또한 점차 개인의 취미나 예술적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의 부족한 에너지를 글자 모양을 만드는 데 소진하게 하기보다,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생각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경험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펜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생각이며, 고통스러운 필기 훈련이 아이의 사고력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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