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글로, 글은 이미지로

예전에 강의실에서 교수님께 질문했다. “교수님,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마디로 정리해 주신하면 어떻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때 교수님의 대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미지를 보면 글로 써보고, 글을 보면 이미지로 그려보게.”

그때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생각을 곱씹을수록 그 짧은 말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새록새록 놀랍니다.

문자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언어를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설명했다. 내 생각이라는 알맹이를 글자라는 껍데기에 담아내면 타인은 그 기호를 해석해 내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결국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생각을 기호로 담아내고 다시 기호를 생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글을 배우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 밑바탕에는 사물을 이미지와 연결하고 그 이미지를 다시 단어라는 기호로 연결하는 꾸준한 연습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사과라는 글자를 배울 때를 떠올려 보자. 인지심리학자 앨런 파이비오는 형태를 지닌 시각적 이미지와 언어적 정보가 함께 처리될 때 학습과 이해가 극대화된다는 이중부호화 이론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처음 사과를 볼 때 실제 사과와 사과 그림을 연결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사과라는 글자를 보고 실제 과일과 그림을 동시에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글자를 보고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 양방향의 연결 과정이 글 읽기의 가장 핵심적인 토대가 된다. (실제 사과 <-> 이미지 사과 <-> 글자,기호 사과)

이 단계가 익숙해지면 우리는 글자가 품은 상징까지 읽어내야 한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언어의 의미를 사전적이고 표면적인 의미인 외연과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더해진 숨은 의미인 내포로 나누어 설명했다. 우리가 읽어내는 사과라는 단어는 단순히 붉고 둥근 과일일 수도 있지만 바르트의 관점을 빌리자면 인류의 첫 범죄를 의미하는 선악과일 수도 있고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뜻하는 상징일 수도 있다. 단어의 세계는 눈에 보이는 명사에서 출발해 감정이나 가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깊어지며 점차 그 폭을 넓혀간다. (실제 사과 <-> 이미지 사과 <-> 상징적 사과)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다시 문단이 될 때 우리는 글을 읽으며 머릿속에 종합적인 한 폭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인지신경과학자 우타 프리스는 자폐 스펙트럼의 인지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중앙응집결함 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자폐 성향을 가진 이들이 세부적인 요소에는 강한 집중력을 보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여러 정보를 통합하여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엮어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한다 내가 현장에서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생각한 점도 이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글<->이미지)

동물학자이자 스스로가 자폐인인 템플 그랜딘 역시 자신은 언어가 아닌 구체적인 시각적 이미지로만 세상을 이해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아이들은 눈앞의 실제 사물을 그림표와 짝지어보는 것은 쉽게 해내지만 그림을 추상적인 글자로 연결하거나 글자만 보고 전체 맥락의 이미지를 스스로 떠올려야 하는 지점에 이르면 점차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글자를 통합적인 이미지로 변환하지 못하니 단어가 조금만 추상명사로 넘어가도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나는 이것이 느린 학습자나 자폐 아동이 글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한 읽기 교육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연습부터 아주 차근차근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상적인 텍스트를 바로 읽히기보다는 이미지와 단어를 짝짓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 밟아나가야 한다.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문단으로 넘어가는 모든 과정마다 파이비오의 이론처럼 텍스트를 시각적 이미지로 연결하고, 프리스의 지적처럼 파편화된 정보를 전체의 맥락으로 통합해보는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글자를 보고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 한 장을 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들은 활자의 벽을 넘어 세상과 온전히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039730

롤랑 바르트 신화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201182

우타 프리스 자폐증 마음과 뇌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332359

템플 그랜딘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44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