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차는 어디로 갔을까요?

아동의 40분이라는 긴 시간과 온몸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길어 올려진 마음의 조각들이 마침내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아이가 힘들게 엮어낸 이야기를 문장으로 정리하며, 그 속에 담긴 단어 하나와 의미 하나를 소중히 새겨보았다. 그렇게 한 줄씩 이어진 문장들은 아동의 먼 기억 저편에 머물던 차를 불러내어, 아이가 차마 다 전하지 못한 깊은 속마음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어쩌면 과거의 그 차는 실제로 연두색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기억 속 색깔은 아동의 말과 달랐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늘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연두색 차, 혹은 그림책 속 선명한 연두색 한 조각이 아이의 머릿속에 잠자던 기억을 깨우는 마중물이 되었을 뿐이다. 일상의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순간들이 ‘연두색 차’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서사로 연결된 셈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맥락 없는 ‘뜬금없는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아동의 머릿속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교하고 합리적인 과정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을 조리 있게 설명할 길이 없어 아이는 내내 답답했으리라.


타이핑하기를 좋아하는 아동을 위해 칠판의 문장들을 화면으로 옮겨 담았다. 아동은 “이응, 여, 니은, 연”이라며 자음과 모음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다. 생각을 표현할 도구인 글자와 마주하는 이 시간, 아동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특히 ‘쌍시옷’이나 ‘쌍디귿’을 쓰기 위해 시프트(Shift) 키를 누르는 그 엄숙한 순간은, 마치 우주에서 가장 힘들고도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는 듯한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깜박이던 커서가 글자로 채워지고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찍을 때 비로소 아이의 표정에는 평온함이 찾아온다. 한참을 애쓰며 생각을 더듬고 다듬어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아동은 맺혀 있던 숨을 크게 내쉬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연두색 차를 버렸다”는 문장 뒤에는 자신이 버린 것이 아니라는 서운함과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오래 썼기 때문이야”, “고장 날 수 있으니까”라며 이별의 이유를 스스로 납득시키려 애쓰는 모습에서는 깊은 상실감이 읽힌다. “연두색 차는 더 이상 없어요”라는 문장을 적어 내려갈 때 느껴지는 속상함은 지켜보는 이의 마음까지 아리게 한다. 이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존재에 대한 부재를 스스로 선언하는 과정은 아이에게 꽤 무거운 무게였을 것이다.


이어지는 “연두색 차는 어디로 갔을까요?”라는 물음에는 단순히 행방을 묻는 것을 넘어선 애틋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눈앞에서 사라진 존재가 어딘가에서 여전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간절함,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아동만의 방식이다. 이제는 곁에 없는 차를 걱정하며 “슬퍼서 엉엉 울고 있을까?”라고 묻는 대목에서는, 익숙한 것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아이 자신의 막연한 슬픔이 투영되어 있다.


아동은 평소에도 “내가 죽으면요?”, “센터가 없어지면요?”라는 말을 반복하곤 한다. 이는 자신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이 영영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의 반어적 표현일 것이다. 이번 ‘연두색 차’ 이야기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아동에게 ‘사라짐’이란 단순히 물건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어디론가 가버리는 거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차가 다른 나라로 갔다”는 설명은 아이의 머릿속에 강렬한 각인으로 남았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어떤 불안이나 변화를 만나 글이 되었다.


말 한마디를 내뱉는 것조차 아동에게는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뇌에서 조음 기관으로 가는 신호가 매끄럽지 않아 입술을 오물거리며 첫 글자를 수십 번 반복해야 하지만, 아동은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고 끝내 스스로의 힘으로 소리를 만들어낸다. 힘겹게 문장을 완성한 뒤 안도의 숨을 쉬는 모습은 안쓰러우면서도 눈이 부실 만큼 대견하다.


아동이 정성껏 고르고 소리 내어 만든 단어들을 다시 읽어본다. 존재의 상실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 그리고 소중한 것들이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녹아있는 그 투명한 진심이 전해져 마음이 짠해진다. 40분간의 사투 끝에 마침표를 찍은 아동에게, 이 시는 세상을 향해 내딛는 가장 용감하고 위대한 한 걸음이었을 것이다.

“연두색 차는 어디로 갔을까요?”에 대한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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